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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왕조실록 / 양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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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2회 작성일 18-11-09 08:52

본문

구름왕조실록

 

    양현주



그녀가 곁을 앓는다

왕은 떠나가고 구름은 텅 비어있다

 

왕이 구름 속의 자오선을 지나는 찰나, 그늘에 앉아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그녀는, 구름을 닦고 답 없는 사각의 벽을 쇠망치로 뚫다가

햇빛 모서리를 사각사각 깎아 먹은 적도 있다 맛있었다

 

여름 한낮 왕의 그림자를 폭식한 웃음

거동이 미쁘다

구름 속에 들어도 왕은 없고

발걸음만 뜨겁다

혼자 뜨거운 저쪽, 꽃 덩굴이 한 올 풀렸다

담벼락을 넘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하루

 

그녀는 왕의 하루를 500킬로 헤르츠 주파수로

설정해 놓았다

 

행여 길을 잃을까 담장 밖으로

문을 낸 안부

 

구중궁궐 분홍 기다림을 풀어놓은 저녁

열두 폭 주홍치마 두른 나팔

배시시 웃을 때

 

저기, 심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와

꽃등을 켜는

능소화

 

왕은 부재중이므로 나는 그 곁을 꽃이라 부른다

 


- 양현주 시집 구름왕조실록(2018, 시산맥 기획시선 공모당선 시집)에서 





 

yanghyounjoo-150.jpg

2014년 계간 시산맥으로 등단

시집 구름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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