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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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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35회 작성일 18-11-27 10:49

본문

피아노

 

    이화영

 


당신은 여든여덟개의 심장을 가진 나부裸夫

당신의 떨림이 허공을 흔들 때

파피루스에 흘린 기억들이 번개처럼 사방에 꽂히고

흑백의 간극이 주는 목마름은

페달의 공명을 타고 숲으로 날아간다

당신 혈관 속으로 흐르는 무수한 음들이

내 심장에 희노애락을 무량하게 무늬 새긴다

당신 생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 손끝이 아릴 때

당신은 무슨 꽃을 먹고 사나 궁금했다

꽃만이 당신의 식사가 될 수 있을 듯했다

당신의 내부로 이르는 계단은 처음부터 미로였다

달 세뇨, 다시 당신을 더듬어 가는 왼쪽 페달을 밟으면

그믐달이 치맛자락을 끌어 잡고 눈 내린 강변에 미끄러진다

당신의 내장을 긁어내면 돌돌 말린 오선지의 늪이 있어

아직 아가미 한번 벙긋하지 못한 물고기와

잎을 뚫고 나오지 못한 가시연꽃의 통증이

태초의 소리를 깨우고 있다

 

계간 시에2011년 봄호

 

 

이화영1.jpg


2009정신과 표현신인상 등단

시집 침향』『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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