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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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5회 작성일 18-11-27 10:53본문
무화과
김나영
고환처럼 생긴 과일,
사타구니로 먹어야 하나?
외설적인 생각을 팬티처럼 벗기고, 벌리고, 쪼갠다
수백 마리의 정자가 고물거리는 듯
세포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수정란인 듯
아니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자웅동체인가
꽃 피는 시절을 건너뛰고 과일에 도착할 수 있다니
진화인지 변종인지 분분해도 무화과는 주렁주렁 익어간다
내 눈은 꽃에서부터 멀어진 뿌리를 겨냥하고
혀끝은 과육의 맛을 탐하는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바지 안에서 여자가 돋아난다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마 안에서 남자가 돋아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뒤엉켜버린 몸이
틀려버린 몸이라고 비난하는 천 개의 입술들이
두 갈래 길 앞에서 망설였던 로버트 프로스트와
남자를 벗고 여자를 갈아입었던 하리수를 생각하며
무화과를 먹는다 밖으로 한 번도 발설하지 못했던 꽃을
입안에서 붉게 으깨지는 무화과를 먹는다
―계간 《시와 산문》 2017년 겨울호
1961년 경북 영천출생
1998년《예술세계》로 등단
2005년,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음
시집 『왼손의 쓸모』『수작』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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