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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타인 / 윤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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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75회 작성일 19-01-25 10:56

본문

가까스로 타인

 

   윤성택

 

 

 길이 저녁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다가

초췌한 표정으로 어느 골목에서

계단을 접고 있을 때,

누군가 전봇대에 기대

불 붙이고 길게 흰 김을 뿜는다

안개가 피는 담배는 쓸쓸하지만

그 한 점 불빛은

먼 건너편 눈시울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건

상처보다 더 화끈거리는

내일이거나 어제를

손끝에 대어보는 사이,

당분간 달은 환약이고

새벽은 약포지처럼 번들거려

보름을 복용해야 한다

뜯긴다는 건 내 것을 내어 보이는 일,

상처는 안으로 저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터오는 불빛이다

길이 조용히 빨갛게 해를 빤다

, 먹구름을 떨군다

가로등 뒤가 손톱 끝처럼 까맣다

때 낀 날은 하루 종일 밖이었는데

손톱을 세워 벅벅 머리를 감는다

후련하다고 해야 할까 미련하다고 해야 할까,

사람은 후일담에서 비로소 추억으로 뽑혀 나오는 거라고

타인으로 헝클어진 음악이

가지런히 빗소리를 벗어놓는다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고 나면

비내음도 창문 틈을 비집고 귀를 댈 것이다

면봉 같은 불빛이 훑어보는 방안,

나는 가려운 것인지 자꾸만 자정을 후빈다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하고

젖은 수건처럼 눅눅해보기도 했을 나를,

거울이 흘깃 구석에 담아 놓는다

사람 사는 게 한 통속에 담긴 빨랫감만 같아

쌓인 무게로 쭈그러진 셔츠의 한쪽 팔이

간신히 통 밖에 걸쳐 있다

안경을 벗기고 엄지와 약지가 이마를 받치면

잠시 눈을 감아줘야 한다 옛일이 생생해

그 한 장면에 압정을 끼울 수 있다 다시 시간이

한꺼번에 인화되는 건 지금밖에는 없다는 걸,

소심한 추억은 잘 알고 있다 극적으로

같은 시각 새벽에 눈을 번쩍 떴다가

스르르 꿈을 놓아줄 수 있어서

가까스로 우리는 타인이다

  

 -계간 딩아 돌하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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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리트머스』『감(感)에 관한 사담들』
산문집『그 사람 건너기』

2014년 제10회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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