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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의 전설 / 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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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0회 작성일 19-01-28 10:58

본문

은하의 전설


  유현숙



떨어진 나뭇잎이 얇게 쌓인 눈에 덮여 있다

몇 계절을 잠든 동안

어둠 너머, 기다림 너머, 별빛 너머 설렘은

내가 손 내밀어 받아 든 첫 빛이다

기차가 지나는 낮은 언덕에 기대어, 기대고 울던 나를 생각한다

기차는 오늘도 나를 지나쳐 갔고 나는

오늘도 여기 서 있다

그리움이다 검은 혁명이다 슬픈 가계와 거역의 기록이다

지새운 밤들과 치열했던 질문과

모의와 추방과 대답 없는 되물음에 대하여

그 모든 직립(直立)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이었으며

또 얼마나 잘못 쓰고 있는 전 생애인지

참회하는 자의 늦은 기도처럼 타는 노을 아래를

지나가는 행인처럼

빈 형장을 적시는 빗물처럼 계절은 지나갔다

가장 아픈 날 쳐다본 은하는 어느 전설에 닿아 있을까

어둔 길 어디쯤에 내려서서 숨을 고르면

나는 왜 아직도 목이 메는가

계절의 먼 뒤쪽에는 폭풍설이 치고

시간의 마디마디를 들고 참회록을 쓰는

뼈가 아픈 푸른 밤

몸피보다 작게 판 눈 굴에다 잠자리를 마련한 북극곰은

동면 중에도 새끼를 낳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못한 채 내 안에 박제된

그대라는 전설

그 불꽃 속으로 내일도 걸어 들어가는 사람 있다


ㅡ『시산맥』 (2018, 겨울호)

 

yhs.jpg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동양일보>와 2003년 《문학 선》등단
2009년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집『서해와 동침하다』『외치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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