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박일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28회 작성일 19-02-11 13:04본문
동행
박일만
바다에 이르는 길은 멀었다
한낮을 지나온 해가 저녁놀 속에 스러지는
길 끝에서 노인은 휠체어에 아내를 앉히고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양손을 손잡이에 얹어 미끄러지지 않게 붙들고 있었다
방파제 쪽에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이대로 쭉 가면 황혼 빛 갯벌이다
뼛가루 같은 진흙이 지천이다
오랫동안 서해를 바라보며
노인은 아내의 어깨에 숄을 덮어 주며
입가에 흐르는 침을 맨손으로 닦아 주었다
백발이 성성한 두 사람이 한 방향을 향할 때마다
해풍이 그들의 얼굴을 함께 어루만졌다
한기를 느끼는 아내를 위해 몸을 움직이자
순간, 노인의 발걸음이 팔랑거렸다
아쁠싸!
길 끝에서 조용히 서 있던 연유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살아오는 동안의 궤적이 점쳐졌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몸이 바람개비처럼 휘청거린,
저것이었구나!
한쪽으로 기우는 다리를 아내의 휠체어가 지탱해 주고
노인은 아내의 다리가 되어 주고 있었던 것
비로소 두 바퀴와 한쪽 발의 절묘한 균형이 이뤄졌던 것
나는 그들의 생애를 다 짐작할 수 없었으나
노인의 절뚝이는 생이
아내의 휠체어에 의지하여 밀고 끌고 왔을 것이다
물때가 바뀌도록 긴 그림자로 남아 있는 그들을 남기고
석양이 붉게 타고 나면
바다는 곧 한낮을 지울 것이다
―박일만 시집 『뼈의 속도』(실천문학사, 2019)에서
전북 장수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詩) 수료
2005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뿌리』등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