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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앞에서 / 박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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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40회 작성일 19-02-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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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박민서


   벽에 찍힌 손바닥은 붉은 비명이다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천천히 시드는 비명, 동여맨 손목들, 실핏줄처럼 아주 느리게 담을 넘고 있다


   지문 없이 찾아갈 수 없는, 먼 시대를 떠돌고 있는 언어, 손가락마다 불꽃을 달았다 벽을 밀어내고 있는

기원이 종유석처럼 자란다 말이란 다 자라지 않으면 더듬거리는 법이다


   손을 맞대는 것으로 만날 수 있는, 벽은 얼마나 오랜 연대가 시큰거리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는 지문들이었을 뿐


   동굴처럼 웅크리고 있는 부족

   손목을 관통하고 있는 터널

   명칭을 나누어 가진 관계가 있었다면 한 손목을 잡고 위로하는 다른 손목을 볼 때도 있지, 손톱이 자라지

않는 손바닥 벽화, 마주보지 않고서는 손을 맞출 수 없어 여전히 벽을 향해 있다 두 번 다시는 접지 않겠다는

맹세를 보았다


   온갖 말들이 들락거리는 관절, 말은 모두 벙긋거리며 동굴을 지나친 것들이어서 악담과 정담이 함께 있다


   며칠 악담으로 시큰거리는 내 손목이 아프다

  

* 스페인 북부 지역의 카스티요 산에 있는 동굴 속 채색벽화.



 - 2019년 시산맥 신인문학상 수상작품 중에서




 


1968년 전남 해남 출생

명지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9시산맥》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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