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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빛 / 박진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4회 작성일 19-02-26 10:05

본문

울의 빛

 

   박진성

 

 

이 빛들은 누가 쏟았을까

겨울의 빛, 휘황과 찬란을 벗겨내고서 이 빛들은 누가 버렸을까

우리는 걸어가네

겨울의 빛을 걷는 일은 물집 속을 걷는 일

헛것의 아늑함과 투명한 것의 고름을 보게나

 

곧 터질 것 같은 물집의 아름다움

물집 속을 걷는 일은 그대의 꿈속을 다녀와보는 일

 

그대는 춥다

그대는 혼자다

그대는 폐허다

우리는 빈집에 기대어 있었네

햇빛의 재가 머무르는 곳에 있었네

, 개종한 사람처럼 그대는 이 도시에 도착하네

낙담하지 말게나

나도 검은 심연 하나쯤 키우고 있으니

부질없이 무너지는 빛에 대해 끝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대의 푸른 손은 망가진 내 몸을 다 만져야 하리

 

겨울의 빛

나의 슬픔들은 이 계절에 늙을 것이다

 

늙은, 폐허의, 빛의 복도를 걸을 것이다

말이 아프면 말을 데리고 손금으로 떨어지는 빛을 따라

 

그런데 이 빛들은 누가 쏟았을까

 

나는 겨울의 빛을 입고

나는 겨울의 빛을 입은 그대에게 간다

 

내가 만지면 그대는 추위에 물들고 말아

저 겨울 빛의 무력함을 보게나

폐허가 되었다는 건 심연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야

 

겨울의 빛

이 누추한 희망의 종착지는 언제나 그대의 이마

 

빛은 계속 쏟아지고

그대의 그늘은 떨리리라

졸음처럼 쏟아지는 이 빛들 속에서

녹았다가 다시 어는 저 물의 반복 속에서

걸어가리라

걸어가리라

겨울의 빛 저 무표정한 다정함을 보게나

 

-박진성 소시집 저녁의 아이들(미디어샘, 2018) 중에서



박진성.jpg


1978년 충청남도 연기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현대시등단

시집 아라리』 『식물의 밤』 『목숨

에세이집 청춘착란』 『미완성 연인들『하와와, 저에게 꽃을 주려고

저녁의 아이들

제7회 시작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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