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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 조어론 / 배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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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2회 작성일 19-03-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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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 조어론 


   배월선


둥글게 둥글게 손바닥을 돌린다
먹고 마시는 것들의 속을 비울 때마다
컵이며 밥공기며 접시며 냄비며 주전자며
사각형보다 둥근형이 많은 그릇들
설렁설렁 돌려도 깨끗해지는 시간
둥글게 돌리고 돌리다 보면
저절로 둥글어져 가는 굴절의 경지
법 없어도 살겠다
간혹 사각의 반찬 통에서도 둥글게 돌리면
통할지를 생각한다
둥근형처럼 둥글게 들어가다간
찌꺼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뾰족해진 원인을 읽어내어야 한다
하는 수 없이 생긴 모양대로 각을 세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선의 방식대로
닦아내고 닦아내어야만 했다
좋은 게 좋다고 무조건 둥글게 가는 것이
다 먹히는 건 아니었다
모나지 못해 둥글었거나 둥글지 못해 모났었거나
귀가 얇았거나 귀를 틀어 막았거나
몸 전체를 숙여 디귿이라 쓰고 이응이라 읽는다
헹구고 헹구어 물기 마를 때까지
매일 밥 먹는 사람을 대행하여
묵언 수행의 산빛 언어를 깨치고 있다
그릇과 그릇끼리 이마를 맞대고
낮은 포복으로 열반을 오르고 있다

 



경남 창녕 태생
2009년 월간《문학바탕》등단
2010년 월간《문학바탕》한국서정문학상 수상
시집『당신과 함께 가고 싶은 나라』『등본이 따뜻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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