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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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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34회 작성일 19-04-01 11:02

본문

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나희덕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막다른 기슭에서라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무언가 끝나가고 있다고 느낄 때

산이나 개울이나 강이나 밭이나 수풀이나 섬에

다른 물과 흙이 섞여 들기 시작할 때

당신은

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발을 멈추고 구름에게라도 물었어야 했다

산을 내려오는 산에게

길을 잃고 머뭇거리는 길에게 물었어야 했다

물결에 몸이 무작정 젖어드는 그곳을

우리는 기슭이라고 부르지

산이나 짐승과 마주치곤 하는 산기슭

포클레인이 모래를 퍼올리는 강기슭

풀벌레 날아다니는 수풀기슭

 

기슭이라는 말에는 물기나 소리 같은 게 맺혀 있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겨난 비탈 끝에는

어떤 기슭이 기다리고 있는지

빛이 더 이상 빛을 비추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마지막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그래도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무서움의 시작 앞에 눈을 감지는 말았어야 했다

 

-나희덕 시집 파일명 서정시(창비, 2018)




 

20070302134806197050752.jpg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 『야생 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반통의 물』 등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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