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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의 원근법 / 이성렬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160회 작성일 19-04-03 17:00

본문

늦봄의 원근법

 

   이성렬

 

 

그해 봄 우연히 눈썹 위에 앉은 꽃가루 몇 점이

숲길 사이의 노란 리본들처럼 나의 여로를 간질여

나는 어느 먼 도시에 무거운 닻을 내리고 그간의

피폐한 행적들을 낯선 지붕 밑에서 가늠하려 했다

 

그곳의 고풍스런 세관 건물 입구에는 오래전 나의

엽서 밖으로 걸어 나간 청동의 촛대가 앉아 있었고

나는 읽고 있던 토마스 만의 두터운 소설을 우정

처연한 마음으로 물리고 새벽의 그림자극을 벌였다

 

갯내음 짙은 항구의 어깨에 기댄 빈 술잔들과

눈을 비비는 가로등의 선잠이여, 시샘으로 팽팽한

세간의 빗줄기를 피해 나는 상점가에 내걸린 색색의

네온등을 천천히 일별하여 끔찍이 외로워도 좋았다

 

뱃머리 사이로 갈라지는 물살은 공중을 부유하는

기억들의 몸부림인가, 덩굴손에 움켜 쥐인 가지의

뒤틀린 고통마저도 내게는 굵은 위안이었으니

누군가는 굽은 등으로 처마 밑을 거닐 것이며

 

어떤 간절한 시편도 낮은 우레에 미치지 못하니

언젠가 다리가 풀리는 날 비로소 무릎을 꺾으며

캄캄한 길에 뿌린 핏자국들이 굳는 날이 올지니

며칠간의 호사 뒤에 다시 찾아들 적빈의 상흔과

 

외톨이의 운명을 잠시 잊고자 하던 그날에 나는

옛 제국의 퇴색한 초상화와 자진한 작가의 유고

폐원 입구에 드리워진 황혼의 오랜 숨결을 향해

애절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장식적인 원근법으로

 

-시와경계2019년 봄

 

 

leesunlyul-140.jpg


1955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및 KAIST 졸업,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

2002서정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 『비밀요원』 『밀회

산문집 겹눈

1회 시와경계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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