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맥주의 밤 /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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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62회 작성일 19-04-08 14:17본문
흑맥주의 밤
하 린
1.
절망아, 가끔 3초쯤 나를 놓쳐도 좋았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충실하다니
나는 중지된다
나는 분리된다
모든 절망에 후일담이 있다면
절망 속에서 숨을 참는 마지막 종족이 될 거다
나를 귀찮게 했던 예감들
나를 피곤하게 했던 위로들
나를 책임지지 않을 한숨만 득실거리니
아침엔 1인분의 후회만 있어도 좋았다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절망은 노련하니까, 치밀하니까
2.
지금쯤 당신의 검정은 완성되었는가
검정을 완성하기 위해 흑맥주를 마신다면
언제쯤 완전하게 우리는 더러워질 수 있을까
잔에 가득 담긴 이것은 시커먼 어둠이 아니라
새까만 좌절이다
당신 안에 거주하던 사내 혹은 여자가 담뱃불로 긴 불면을 지지고 있다면
삭을 대로 삭은 체념을 난간에 걸쳐 놓았다면
충혈된 눈동자가 끓어올라도 당신은 함부로 뛰어내릴 수 없을 거다
도대체 무슨 악연인가
하루 종일 검정이 당신을 따라다닌다
날씨가 되고 배경이 된다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미 충분히 발효되고 있는데
통증을 감내하기엔 당신 안에 거품이 풍부하게 많은데
ㅡ하린 시집 『1초 동안의 긴 고백』(문학수첩, 2019)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박사)
2008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창작안내서 『시클』
『1초 동안의 긴 고백』등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 2015년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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