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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신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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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229회 작성일 15-10-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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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비트 17

 

     신동옥

  


   당신은 작전지도의 북쪽 고사리 숲에서 잘린 손가락을 주머니에 담는다. 잘린 손가락에 검은 담즙을 찍어 편지를 쓴다. 나는 작전지도의 남쪽 목책 아래서 잘린 손가락에 묶인 당신의 편지를 줍는다. 지금은 다만 남루한 존엄으로 서로를 위장한 게릴라전의 나날, 나는 지금의 당신이었고 당신은 지금의 내가 될 것입니다. 병적인 목마름이 당신의 피를 검게 하오.

 

   당신은 이름 모를 나라의 알 수 없는 전쟁에 사로잡힌 포로였다. 오직 당신만이 내가 겨눈 나만의 적이었고 오직 나만이 당신이 겨눈 당신만의 적이었다. 우리는 서로 싸우기 위해 잡힌 걸까? 서로 잡히기 위해 싸운 걸까? 제네바, 협약은 늘 당신이 모르는 나라에서 체결되고, 입체파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참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몸뚱이를 쌓고 허물었다.

 

   쌓고 허물고 쌓고 허물었지. 한때 우리는 토네이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침대보에 싸여 서로의 이름을 불렀지. 지금 나무 침상은 머나먼 목책 아래서 썩어가고 창유리에 날아와 부닥치며 노래하던 새떼는 백기가 되어 마른하늘에 점점이 펄럭인다. 이제는 속이 빈 몸뚱이에 시멘트를 채우고 굳어가며 우리 서로의 어깨에 목덜미를 묻고 잠드는 긴 긴 참호 속의 나날.

 

   다 닳은 풀빛 죄수복 바지에 웃통은 벗어젖힌 채 헝겊에 고무 밑창을 덧댄 넝마를 발목에 끼우고, 당신은 말했지. 이것 봐 신발을 잘 간수해 걷지 못하는 자는 낙오하고 말아. 이 미로를 빠져나간다면 우리의 발뒤꿈치는 달의 뒤편에 멋진 발자국을 새겨 넣겠지. 우리 서로에게 게으른 형리가 되자꾸나. 모쪼록 우리 서로 남은 죽음까지 모조리 죽이자꾸나.

 

   나는 알 수 없는 나라의 이름 모를 전쟁에 사로잡힌 포로였다. 허리 뒤로는 묶인 손바닥이 타오르고 오장육부는 썩어 납빛으로 변해가는 몸에 질기디질긴 핏줄의 힘으로 말라가는 살가죽 위에 더딘 진실과 애타는 절규를 돋을새김 한다. 당신은 내 척추를 빨고 나는 당신의 피를 마셔라. 오직 당신만이 내가 겨눈 나만의 적이었고 오직 나만이 당신이 겨눈 당신만의 적이었으니.





 

1977년 전남 고흥 출생
2001년《시와반시 》등단
시집『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고래가 되는 꿈』
산문집 『서정적 게으름』등
 

제16회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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