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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기 꽃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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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67회 작성일 19-04-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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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기 꽃


   박수현



  복개천 골목시장 입구, 전철 길보다 낮게 웅크린 집 마당에 박태기나무 한 그루가 봄비에 젖고 있다

나는 철거 날짜 어른대는 전봇대를 반쯤 열린 대문 옆에 세워놓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진자홍 밥풀을

따 다담다담 밥을 짓다 손톱으로 목덜미를 긁어대던 가시내가 있다


  철거반원들이 해머로 벽을 치자
  꽃대 없는 꽃들이 더 붉게 앓아 떨어지던 집
  대문 한 짝이 떼어지자
  사과 궤짝 안 토끼 두 마리가 바닥을 긁어대던 집
  내동댕이쳐진 그림일기장 속
  바둑이가 낑낑대며 마당으로 달려 나오던 집
  채 묶지 못한 이불 보퉁이에 매달린
  수수밥 풀떼기 같은 가시내들 울음소리
  꼭꼭 씹으면 입맛만 다시던 집
  속엣것 쏟아내면서 외마디 비명도 없이
  맥없이 주저앉던 그 집

  박태기 꽃잎들이 후두둑 비속에 지고 있다 얼룩얼룩 노란 철거 날짜가 젖은 봄을 긁어댄다 우산

너머 산복도로 쪽으로 마을버스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어오른다 비에 젖어 더 또렷한 꽃잎처럼

기억은 우산만한 가려움을 펼쳐든다 나는 장바구니를 흔들며 ATM 출납기 부스로 들어선다
 

-시와 문화(2019, 봄호) 


112.jpg


 2003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공저 시집 관계에 대한 여덟가지 오해』『티베트의 초승달』『밍글라바 미얀마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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