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수레 / 안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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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수레
안시아
노인은 내리막길처럼 몸을 접는다
밤새 쌓인 어둠을 수거하고
수레 위 차곡차곡 재활용 상자를 쌓고 있다
상자마다 뚜렷이 접힌 흔적들
그 角이 포개져 품을 만든다
바퀴가 회전할 때마다
노인의 야윈 마디가 함께 맞물려 삐꺽거린다
어떤 세월이 구부러진 角을 만든 것일까
곧게 내리던 하얀 눈들도 굽은 등위에서
한번 더 미끄러지고 있다
구부러진 길이 골목을 품듯,
노인은 점점 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수레 위 차곡차곡 접힌 生이 묵직하다
헉, 헉 뜨거운 입김이 골목을 큰길로 끌어내고 있다
품 가득 곧, 햇살이 안겨올 것이다
골목을 다 빠져나올 무렵
축이 닳은 바퀴가 성급히 회전을 한다
끌어온 길을 축으로 힘껏 잡아당길 차례다
노인은 마지막 角을 그려내고 있다
―2003년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작중에서

한양여대,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3 《현대시학》등단
시집『수상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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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애님의 댓글

길을 가다가도... 박스를 줍는 어르신들을 보면 다시한번 생각이 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