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에도 껍질이 있다 / 이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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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3회 작성일 19-05-30 09:25본문
방귀에도 껍질이 있다
이향지
휘저어놓은 창자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동안
방귀는 꼭꼭 숨었다
뿡뿡거리며 재빨리 나섰다가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는 맹장처럼 싹둑 잘릴지 몰라
창자벽에 들러붙어 숨을 참는 것이다
방귀 터지기를 기다리는 이틀 동안
두레상 둘레에서 까먹고 버린 껍질 생각을 한다
안방 마루에 독상을 받고 이틀 동안
아버지는 백수였다 보리밥 싫어 반찬 싫어
밥그릇 바닥을 푹푹 파고 있으면
두레상 쪽 엉덩이를 들며 큰 언니 이름을 불렀다
"아나! 이것 까서 사이좋게 갈라먹고
껍데기는 멀리 갖다버려라! 아이들 발 찔릴라!"
마룻장 울리며 굴러오는 알방귀 소리에 하하 깔깔 웃다보면
갓 삶은 계란 서너 개는 까먹은 듯 목구멍이 보드레졌다
두레상 둘레에서 방귀 까먹듯 아버지를 까먹고 살다
데쳐놓은 소풀 지경에 이르러서야
너무 멀리 갖다 버린 껍질 생각을 한다
―2006년 계간 《시작》 봄호
1942년 경남 통영 출생
1967년 부산대 졸업
198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2003년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시집으로 『 괄호 속의 귀뚜라미』『구절리 바람소리 』
『내 눈앞의 전선 』『山詩集 』『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편저『윤극영전집 1,2권 』산악관련 저서로 『금강산은 부른다 』
산행에세이『산아, 산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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