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 이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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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90회 작성일 19-06-13 09:07본문
모래시계
이성목
처음에는 한 알의 모래
단지 한 알의 모래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모래의 서걱거림 모래의 쿨럭임 모래의 헛기침이 사라진 곳으로 가기를 원했다
더 이상 무너지지도 깨어지지도 않는 한 알의 모래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세계는 모두 하나의 유리 감옥
낯선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신기루처럼 사라질 여행의 종말
오로지 한 알의 모래인 세계가
무수히 많은 한 알의 모래들을 받아내는 참혹과 맞닥뜨릴 뿐
미지는 벌써 제 하반신을 모래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좁고 긴 도시의 병목을
안간힘으로 빠져나갔다 해도 결국은 다시 사막으로 되돌려지는
단지 한 알의 모래로 시작된
모래알 같은 열망이 시간에 금을 낼 수 있을까만
처음의 그곳으로 되돌아온 무수한 한 알의 모래들
한 알의 모래로 시작하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상반신을 바람에 날려버린 행상들이
허공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이성목 시집『함박눈이라는 슬픔』(달아실, 2018)에서
1962년 경북 선산 출생
1996년 《자유문학》 등단
시집으로 『뜨거운 뿌리』『노끈』『함박눈이라는 슬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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