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소묘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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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29회 작성일 19-07-11 09:56본문
동물 소묘
이현호
"요즘 어때?" 누가 물어오면, "그냥."이라고 얼버무릴 날들
마음이 마음을 돌보지 않은 지 여러 날이다
창밖 놀이터의 벚꽃은 이 저녁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힘들다는 거, 방금 몸 매달 한 가닥 줄도 없이 방바닥을 가로지르던 점 하나
그 거미의 옹송그린 자세 같은 거
불을 켜지 않는 방에는 실수로라도 찾아올 날
벌레도 없는데, 나는 괜히 미안함을 가져보고 싶어서
거미를 지켜보기도 했지 아껴 맛봐야 할 마음의 양식인 듯이
"왜 그래?" 누가 알아주면 ,"아무것도." 라며 흐릴 날들
씻어야 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
샤워기를 틀면 습기 찬 저녁은 알몸뚱이를 거미줄같이 감싸고
방바닥에 흘린 물기를 걸레로 닦으며
물 한 방울 마실 데가 없었을 너에 대해 반성했지
나는 어쩐지 미안함을 느끼고 싶어, 방바닥에 붙어 눈감고
침묵으로 거미의 울음소리를 돌보고 있으면
이 밤이 벚꽃을 토하는 소리가 창을 넘어오고
'괜찮니?' 혼잣말을 하면, 방 한구석에
작은 물방울의 자세로 숨을 죽이는 감정 하나
마음의 변태로나마 붙잡고 싶은 한 목숨이
거미줄도 없는 허공에 매달려 아슬아슬 깊어진다
- 이현호 시집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문학동네, 2018) 중에서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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