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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연인이 온다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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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48회 작성일 15-11-10 10:08

본문

늙은 연인이 온다

 

이선영

 

 

늙은 연인이 걸어온다

내 안에 들어오면 젊어지는 연인

나를 젊어지게 하는 연인

그대로 멈추고 싶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늙어지는 연인

나를 늙게 하는 연인

 
자유롭게 늙어 가려고 돌아선 등 뒤로

젊음이 촛농처럼 질질 녹아내리는 연인

나도 따라 녹아내리게 하는 연인

 
그 앞에선 영원히 젊고 싶은 마음이

나를 철렁 늙게 하는 연인

 
차라리 나 좀 맘껏 늙게 내버려두라고

부채 바람 일으켜

땅 끝으로 날려 보내고 싶은

 
아, 흰 머리 반 검은 머리 반을 한

곧 가리마가 한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고야 말

 
성난 나귀처럼 뒷발로 걷어차 버리기에도

구름 이불 속에서 들썩이는 비가 되기에도

너무 늦은 나의 늙은 연인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 가엾은 비눗갑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 『일찍 늙으매 꽃꿈』『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하우부리 쇠똥구리』
‘21세기 전망’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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