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서쪽, 바람의 동쪽 / 한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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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37회 작성일 19-08-26 10:25본문
달의 서쪽, 바람의 동쪽
한우진
나는 무슨 고민이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흘린 처녀라든가 진탕, 흥청,
뭉게구름이 짓이겼을 유방의 뼈,
이런 것들의 향후 자태를 추발(抽拔)하려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고민은 내 것이 아니지요
나는 바람의 서쪽,
달의 횡격막 안창살을 발라내기에도 바쁘거든요
그러니 파릇파릇 새싹인 양 유난을 떨어대는 고민일랑은 내 것이 아니에요
나는 유별(有別), 유별(留別)을 버렸지요
떠나는 건 일도 아니에요
고기는 뼈에 가까울수록 맛있다고들 하지요
사랑도 이별에 가까울수록 찰지고 떠날 때 진가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뼈에 사무치리만큼 서늘한 고민 따위는
내 것이 아닌 게 분명해요
나는 달의 제비추리 그 풍미를 느끼기 바쁜
바람의 서쪽, 그렇다고 돼새길 만한 과거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 애의 이름은 달의 동쪽
에스케이주유소에서 일하다 만났지만, 떠날 때 귀고리는 엄청 찰랑거렸지요
저무는 쪽에서 만난 애인들은 이별에 능수능란하다가도 쓸려 떠내려가는 머리카락 한 올에도 욱신거려, 울먹거리기 일쑤지요
해결을 본 뒤에는 치열한 사랑이란 없는 법이지만 ‘어디를 향해 짖어야할지 모르는 사냥개’*가 애인을 둔 애연가지요
삼단[딴] 같은 머리, 그런 건 내 고민이 아니에요
* 윌리엄 포크너
-한우진 시집 『지상제면소』 (책나무, 2017)
2005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까마귀의 껍질』『지상제면소』
2007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기금과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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