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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 신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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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20회 작성일 19-08-27 09:36

본문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신영배

    

 

나무에 기대지 않고

그 여름

푸른빛에 두 다리가 녹아들었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숲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지

 

계단에 기대지 않고

그 시인은 사라진 방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계단이 방의 성경을 읽는

빌딩의 숲에서

어떻게 그 사라진 방으로 들어갔을까

 

어떻게 사라졌을까

문을 여는 동시에

 

흔들린다

 

무너져 내리는 숲의 한 귀퉁이를 가꾸느라

나는 사계절을 다 쓴다

물에 떠내려간 초록색 입술들을 모아

한 겹 아름다운 귀를 만들고

귓속으로 숲을 옮길까

속삭이는 나무의 말들을 모을까

 

그날은 두 손을 씨앗처럼 땅에 묻고 돌아오던 때였지

노을 속에서 물랑이 물랑물랑

등 뒤에 손목을 감추고 나는 고백했지

죽은 것처럼 슬픈

손목에선 꽃이 피어아고 있었는데

 

고백하는 동시에 날아가버리는 빛을 쫓아

물랑을 물랑물랑

 

어떤 말로 사라질 수 있을까

 

손목은 계절을 반복하고

한 아름의 수화를 가슴에 안고

나는 고백을

 

어떤 문장으로 숲을 깨울까

 

가슴을 씨앗처럼 땅에 묻고 누우면

숲이 일어날까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흔든다

 

물랑 옷을 입고 물랑 춤을

물랑 옷을 벗고 물랑 춤을  

 

 —신영배 시집『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문지, 2017)에서





sinyoungpae-150.jpg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2001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물 속의 피아노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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