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 조현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22회 작성일 19-09-26 10:48본문
쉰
조현석
1
배낭 꾸렸다 되도록 아주 가볍게
걸을수록 거듭거듭 산비탈만 나타났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이 알아서 미끄러지고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알아서 미끄러져주고
허구한 날 늘 미끄러졌던 기억들, 이젠 정겹다
2
어스름 속에 산 아래 불빛
어느 것이든 따뜻하지 않을까
핑!
눈물이 돌도록 따뜻하다
순간 속이 쪼그라들어
꼬일 대로 꼬이는 허기
3
마흔 지나 근 십 년 모든 관절에 삐걱거릴 정도로
걸어서 또 걸어서 다가갔다 생각했으나 아직 다 오지 않았다
이제 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간혹 생각 끊는다
쉬고 쉬고 또 쉬어서 쇠막대기에 붉은 꽃 피거나 검붉은 녹 돋아 삭을 대로 삭아 먼지로 흩날릴 때까지
4
아이고 직진 밖에 모르는 성격이야
당신은 이번 생이 인간으로서 처음이야
뒷목 뻣뻣하게 당기게 하는 노점 사주쟁이의 말
돌아서는데 꽉! 뒤꿈치 깨무는 한 마디
아직 멀었어 더 열심히 살아
―조현석 시집 『검은 눈 자작나무』(문학수첩, 2018)에서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스케치』
『불법, …체류자』 『울다, 염소』 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