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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칭의 자세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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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337회 작성일 19-11-04 10:02

본문

2인칭의 자세

 

   이영주

  


   볼 수 없는 얼굴을 너는 자꾸 보는 척한다 그 얼굴을 따라하고 싶어 한다 너는 텅 비어 있으니까 꿈 같은 건 없으니까 잘 망하고 싶다는 막연한 안부를 전하고 너는 자꾸 우는 소리를 낸다 다른 불행을 지어내서 열심히 울다 보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거니 나는 처음부터 그것이 궁금했다 너는 자꾸만 내 불행을 따라하고 나는 점점 옷을 벗고 가벼워진다 고통이 없는 것이 불안해서 너는 식물의 뿌리를 자르고 화분에 머리를 박는다 그것이 너의 모닝 인사 화끈하게 어디에도 없는 하루를 시작하지 기분의 근원을 모르면서 남들 따라 긴 산책을 시작하고

 

   그 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어서 너는 숲의 정령들을 불러낸다 정령의 꼬리 끝에 딸려 나온 피 묻은 액자, 잘 벼려진 칼날, 쓰이다 만 족보, 네가 부러뜨린 어머니의 팔, 목 잘린 고양이, 낡은 노트, 불 탄 새, 해변의 공장, 어디선가 본 듯한 소년들…… 이렇게 꿈에서 망가뜨린 목록을 늘어놓고 공포의 얼굴을 그려보려 한다 너는 무엇도 잘 보이지 않고 불행을 도둑맞은 나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길은 끝나지를 않아 너는 아픈 다리를 움켜쥐며 주저앉는다 근원을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해

 

   어머니는 인상적이지 않죠 좋을 때는 좋고 싫을 때는 별로 없었는데 그래서야 공포의 흔적이 어떻게 생기겠어요 미안해요 어머니 팔을 부러뜨렸어요, 라고 쓰고 나서 너는 깊은 함정에 빠진다 너는 일기를 쓸 때마다 무슨 말을 지어낼까 고심한다 없는 문자를 아무리 찢어도 부정의 얼룩이 생기질 않으니 너는 한 줌 연기처럼 사라지는 나의 목을 조른다 이 수많은 고통들을 어떻게 네가 다 가지고 가려고 하지 너는 낮게 중얼거리며 내가 적힌 한 페이지를 구겨버리듯 손아귀에 점점 더 힘을 준다 나는 사라지면서 선혈을 흘린다 너는 그제야 떨어지는 얼룩들을 천천히 핥으면서 자신이 파국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계:든시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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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108번 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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