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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깊이 / 최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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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08회 작성일 20-01-16 10:46

본문

손의 깊이

 

   최지하


 

비린내는 하얗다

칼의 지문에 가려져 알 수 없는 깊이

 

날마다 도마 위에서 핏줄 불거지던 날것의 계절들은

마침표가 없는 당신의 이야기가 되었다

 

당신에겐 없다고 믿었던 울음이 쓰이던 날

우리는 농담을 하며 새 안경을 사고

 

한 줄씩

공들여 마친 당신의 그리움을

우연히 도착한 비라고 가볍게 옮겨 적었다

 

당신의 발자국에서 매일 커지는 발

그곳에서 바다는 시작되었는데

 

바다는

먼 곳만 있었다

 

당신의 손가락에서 규칙적으로 핀 꽃잎을

여섯 번째 불가능에 속한 순간을

가장 먼저 손에 닿는 식탁에 놓아주었다

 

당신을 넣고 닫아 버린 문장엔 한 개의 부호도 없어

비린내와 향수를 분별해 읽을 수 없었다

 

그물에 걸려 퍼덕거리는 바람은

당신의 두 번째 배경

펼친 우산을 십 년 후의 각도로 돌려놓고

당신이 보는 것과 다른 것만 보았다

 

마침내

옆모습을 씻는

우리에겐 기적처럼 비린내가 났다

 

바다의 첫 문장을 손질하는

당신 손의 새벽처럼   

 

최지하 시집 오렌지나무를 해답으로 칠게요(2019)에서


 

 

충남 서천 출생

광운대학교 대학원 졸업

2014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꼭 하고 싶은 거짓말』 『오렌지나무를 해답으로 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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