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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돌이라는 곳 /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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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0회 작성일 20-02-03 15:46

본문

천돌이라는 곳

 

  정끝별


 

목울대 밑 우묵한 곳 그곳이 천돌

 

쇄골과 쇄골 사이 뼈의 지적도에도 없는

물집에 싸인 심장이 노래하는 숨 자리

목줄이 기억하는 고백의 낭떠러지


와요 와서 읽어주세요 긴 손가락으로

아무나가 누구인지 모든 게 무엇인지

묻어둔 술통이 익을 즈음이면

숨들이 밤으로 스며들고

혼잣말하는 발자국이 하나둘 늘어나요

어떤 이름은 파고 또 파고 어떤 이름은 묻고 또 묻고 애초에 없었던 어떤 이름은 그냥 밟히기도 하고

박힌 희망에 호미 자루가 먼저 달아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면

눈물의 밀사가 관장하는 물시계 홈통에 물 떨어지는 소리

와요, 어서 와서 대주세요 긴 손가락의 지문으로

지도에도 없는 천 개의 돌을 열어주세요

발소리도 없이 들었다 잠시 별을 피워낸 서리입김

유리컵처럼 내던져진 너라는 파편과

인도코끼리 같은 오해의 구름,

그리고 지리멸렬에 묶인 지리한 기다림이

기억의 물통을 채울 때면 망각의 타종 소리가 맥박처럼 요동치는 곳


뜻밖을 살게 한 천돌이라는 그곳

어떤 이름을 부르려 달싹이는 입술처럼

천 개의 숨이 가쁜 내 고통의 숨통

 

정끝별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문학동네, 2019)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와락』『은는이가』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오룩의 노래』
여행산문집『여운』『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
시선 평론집『시가 말을 걸어요』등
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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