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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 선잠 /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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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79회 작성일 20-03-02 10:13

본문

홀연, 선잠

 

   김정수

 

  

나는 매번 목만 살아 있어요

목 아래 몸은 암매장 당했어요

 

목각인형도 없는 침대에서 고양이가 분홍 책을 반복해 읽어요 길들여지지 않은 가구들이 나를 쏘아봐요 거울 뒷면으로

낯선 불의 통증 몰려와요

 

점차 목 위로 차오르는 갈증

발가락을 움직이는데 생의 절반을 써야만 하다니

 

불면의 접시 위에서 누군가 삽질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난 잘 살고 있어요 악몽이라니요 악몽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눈알 같은 거잖아요 몇 그램의 의식이 잠시 멈춘 사이 의심이 목젖을 흔들어요

 

분홍에서 빨강까지

 

도착하지 않은 새벽이 장롱과 거울을 흔들어 깨우면

음악도 연민도 없는 피아노가 가위처럼 일어나요

 

, 내가 죽은 건가요

오드아이,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있던 고양이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요 옷장이 거울을 나서는 동안 눈과 눈 사이가 멀어져요

 

맙소사, 저게 내가 낳은 아이라니

 

곧 사라질 빛이 입을 틀어막아요

왼발이 오른쪽으로 까닥까닥 돌아누워요

 

 계간 포지션2019년 봄호 



ee.jpg

 

1963년 경기도 안성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0현대시학등단

시집 서랍 속의 사막』 『하늘로 가는 혀

2013년 한국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8회 경희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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