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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씨 /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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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3회 작성일 20-05-2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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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씨 

 이동훈

 

 

응달진 담벼락 밑이 고향인 살구 씨
빛받이도 없는 좁은 골목에
무연고자로 쓸쓸히 내동댕이쳐진 생이다
누군가 무심히 뱉고 지났을 자리에
살구 싶다고 살구 싶다고
머리를 내민 것은 순전히 살구 씨의 오기였다
반대편 담장으로 금세 빠져나가는,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빛을 그러모아
눈만 겨우 씻고 나면
낮이나 밤이나 어두침침했으니
살구 씨는 몸 가누는 일조차 시원찮았다
영양실조로 배가 불거지는 대신
살구 씨는 몇 해 동안 웃자라기만 하여
삐쩍 마른 몸에도 키가 네댓 길이나 되었다
끝끝내 그리던 빛에 닿은 것은
살구 싶다는 살구 씨의 간절함이
해를 당겨 키를 키운 것인지도 모른다
빛기둥처럼, 붉은 살구나무가 된 살구 씨
살래살래 부는 봄바람이
불임의 몸을 치유하는지 몽우리가
처음으로 잡힌다.
 

 

 

1970년 경북 봉화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교육대학원 졸업
2009년 월간《우리시》신인상 수상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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