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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 이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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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30회 작성일 20-08-12 08:32

본문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이나명

 

 

그날 고양이가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속으로 숨어들어갔어요.

올해로 열여덟 살이었는데요. 한 며칠 허공을 딛는 듯 휘청휘청하더니

밥 대신 물만 조금조금 먹더니 몸을 아주 가볍게 만들더니 어둠 속에서

눈만 훤히 뜨고 나를 향해 무어라 무어라 마른 입술을 달싹였는데요.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요.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보았지요. 애들이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간다지요. 그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지개다리가 어딘가 떠있었나 봐요. 그렇게 가벼워졌으니 새처럼 훌쩍 날아올랐겠지요. 그리고 벌써 넉 달이 지나갔네요. 앞으로도 넉 달이 지나가고 또 넉 달이 지나가고 또 넉 달이 지나가겠지요. 무지개다리

아래로 위로 여전히 시간은 흐물흐물 흘러가겠지요. 꼭 꼭 숨어서 숨소리도

안 들리는 고양이는 저 있는 곳으로 제가 좋아하는 햇볕은 잘 불러들이고 있는지, 그곳으로도 제가 다닐 만한 길을 만들어놓고 겁도 없이 혼자 잘 돌아다니고 있는지, 나는 다만 이곳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저쪽 세상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쩔 수 없이 고양이와의 모든 기억을 곱게 빻아 담은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를 안방에 있는 유리 책장 안에 책들과 나란히 넣어두었어요. 나는 또 가끔씩 그 기억들을 꺼내 들고 고양이 이마를 비비듯 내 뺨에 가만히 비벼 보겠지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결국, 그러니까

바로 내가 그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라는 걸 깨닫게 되겠지요.

날이 갈수록 반질반질 닳아서 마침내 흔적 없어질 기억 상자라는 걸.


 

              ⸺시집 조그만 호두나무 상자(20207)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금빛새벽』『중심이 푸르다』『그 나무는 새들을 품고 있다』
『왜가리는 왜 몸이 가벼운가』조그만 호두나무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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