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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m 꿈 / 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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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1회 작성일 20-09-07 16:36

본문

1mm

 

   함기석

 

 

눈을 떠보니 얼음 방이다

벽도 천장도 얼음으로 덮여 있다

얼음 침상에 아내가 누워 자고 있다

물고기 비늘무늬 얼음 이불 속에서

아내는 냉동새우처럼 쪼그린 채

언 꿈을 꾸고 있다

침상 밑에서 딸아이가 못으로

얼음 방바닥에 기린을 그리고 있다

드래건을 그리고 있다

숲을 그리고 있다

큰 녀석은 성에로 뒤덮인 창가에 서서

폭염의 거리를 내다보고 있다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녹아내리는 사람들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내 곁에 누워 있다

외짝 나무젓가락처럼 누워 있다

냉동 미라처럼 누워 눈만 말똥거리고 있다

그때 가늘고 예리하게 울린다

아내의 멍든 어깨가 빙하처럼 무너지는 소리

아내의 언 꿈이 부서지는 소리

딸아이가 그린 숲과 기린과 드래건이

조각조각 깨지는 소리

나는 얼른 일어나 아내를 흔들어 깨우려고

벌떡 일어나 딸아이를 껴안으려고

힘껏 목을 돌린다

목은 1mm도 돌아가지 않고

목에서 등줄기를 따라

울린다, 내 몸이 대륙처럼 갈라지는 소리

다시 힘껏 발을 움직인다

발도 1mm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더 깊이 내쉰다

간신히 입김을 내쉰다

간절한 입김으로 언 입술부터 녹인다

얼음의 방에서 얼음 아이 얼음 열대야를

1mm1mm1mm


hamkisuk_150.jpg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3년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2작가세계등단

시집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공원』 『오렌지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동화 상상력 학교

2006년 눈높이아동문학상, 10회 박인환문학상, 8회 이형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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