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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천사 / 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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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70회 작성일 20-09-07 16:38

본문

물과 천사

 

   김 안

 

 

푹푹 발이 빠져 걸을 수 없었어요

빠져나갈 수 없었어요 내 머리 위에는 친구의 머리카락

친구의 신발 친구의 가늘고 흰 목 친구의 마음

친구는 어딘가에 놓여서

 

오래된 냉장고에서 세계의 끝을 보았습니다

피와 냄새와 술과 시간의 고름이 뒤섞인 물속에서

물의 찌꺼기로 만든 노란 방에 놓인

흐늘거리는 붉은 살

 

손바닥 위에 적어주던 번호도

어깨 위에 쌓아두었던 서툰 맹세도

마룻바닥에 떨어져 잡히지 않는 수박씨처럼

더듬거리던 말들도

 

오늘은 여름이고 내일은 어떤 계절이 오든지 상관없어

가난한 천사가 떨어뜨린 깃털이 날아오르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너의 얼굴마저도 잊을 뻔한 창문의 시간이 깨지면

외로운 시간 따위야

 

푹푹 발이 빠져서 네가 걸을 수 없으니

창문을 깨고 날 수도 없으니

물의 억양을 배울 수밖에

나 또한 물속에서 널 초대할 수밖에

 

 

            ⸺월간 시인동네20208월호




본명 김명인

1977년 서울 출생

2004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

제5회 김구용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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