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휘장과 노래 / 박성현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밤의 휘장과 노래 / 박성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06회 작성일 20-09-28 14:10

본문

밤의 휘장과 노래

 

    박성현

 


1

 

마을에 들어서면

밤의 긴 허밍이 들려왔다

마을은 새파란 숲의 벽과 두께

매일 눅눅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지나갔다

 

이십 년 전에도, 더 오래된 날에도

밤이 부르는 노래는

마을에 있었고 떠나지 않았다

 

2

 

밤이 목소리를 연주하면 마을의 창은

빛나기 시작했다 바람과 식물은 물러나 고요했고

밤을 사랑한 사람들은 낯선 잠에 빠졌다

 

아주 잠깐 밤의 노래가 들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공동묘지와 예배당에 갔던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왔다

마을 전체가 불타버린 듯 단단한 침묵에 휩싸였고,

뙤약볕이 쏟아지는 동물원처럼 무기력했다

모두 하마와 기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밤이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사람들은 약속한 듯 밥을 사막과 소금이라 불렀다

형제처럼 밤의 곁을 지키며 밤의 눈과 말과 꿈을 기록했다

밤이 걷는 길과 밤이 노래한 모든 사물을 찾아냈다

밤의 숨결에 묻는 먼 곳의 바람도 냄새도

늦은 오후의 서늘하고 부드러운 물결도

 

그러므로 밤의 노래는

익숙하지만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휘장과 고립과 용서였다

 

3

 

그때 밤은 창을 열고

먼 숲의 기척들을 바라봤다

먼 숲이 밤의 노래로 새파랗게 타올랐다

창과 악기와 무대에 별이 뜨고

구름과 달이 갈라졌다

 

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옛날이 찾아왔다 밥과 술을 나눠 먹으며

밤의 악보를 기억했다 누구보다

집중했으므로 밤을 사랑한 사람들은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희미하게 어른거리던 꿈과 어둠

나는 아직도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기억한다

흥얼거리면 어느새 밤이 곁을 지키고

어머니와 할머니와 더 오래된 여자와 여자들이 모여

어린 나를 감싸는 것이었다

 

4

 

밤은 노래를 부르며

나와 먼 숲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잃어버린 색깔과 글자가

휘장과 고립과 용서 속에서 뚜렷했다

 

삼십 년 전에도, 더 오래된 날에도

내가 죽었던 마을에는

밤의 길고 긴 노래가 들려왔다

 

  ⸻계간 시산맥2020년 가을호





1970년 서울 출생

2009년 중앙일보 등단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시집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등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169건 1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공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7351 2 07-19
316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 1 10:55
316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 1 10:49
316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 1 10:24
316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 1 04-22
316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 1 04-22
316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 1 04-22
316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 1 04-19
316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 1 04-19
316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 1 04-19
315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9 1 04-16
315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 1 04-15
315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 1 04-15
315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 1 04-15
315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5 1 04-11
315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 1 04-11
315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 1 04-11
315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 1 04-11
315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7 2 04-05
315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2 2 04-05
314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 2 04-05
314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0 7 04-02
314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8 2 04-02
314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8 2 04-02
314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7 2 03-27
314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9 1 03-27
314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5 1 03-27
314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 1 03-27
314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 0 03-27
314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2 3 03-13
313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9 1 03-13
313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91 1 03-13
313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 1 03-13
313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4 1 03-11
313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6 2 03-11
313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4 1 03-11
313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7 3 03-11
313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3 1 03-08
313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 1 03-08
313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7 1 03-08
312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7 1 03-08
312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8 1 03-08
312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5 1 02-12
312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9 1 02-12
312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46 1 02-12
312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6 1 02-12
312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4 1 02-07
312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2 1 02-07
312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04 1 02-07
312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22 2 02-07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