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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휘장과 노래 /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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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9회 작성일 20-09-28 14:10

본문

밤의 휘장과 노래

 

    박성현

 


1

 

마을에 들어서면

밤의 긴 허밍이 들려왔다

마을은 새파란 숲의 벽과 두께

매일 눅눅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지나갔다

 

이십 년 전에도, 더 오래된 날에도

밤이 부르는 노래는

마을에 있었고 떠나지 않았다

 

2

 

밤이 목소리를 연주하면 마을의 창은

빛나기 시작했다 바람과 식물은 물러나 고요했고

밤을 사랑한 사람들은 낯선 잠에 빠졌다

 

아주 잠깐 밤의 노래가 들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공동묘지와 예배당에 갔던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왔다

마을 전체가 불타버린 듯 단단한 침묵에 휩싸였고,

뙤약볕이 쏟아지는 동물원처럼 무기력했다

모두 하마와 기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밤이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사람들은 약속한 듯 밥을 사막과 소금이라 불렀다

형제처럼 밤의 곁을 지키며 밤의 눈과 말과 꿈을 기록했다

밤이 걷는 길과 밤이 노래한 모든 사물을 찾아냈다

밤의 숨결에 묻는 먼 곳의 바람도 냄새도

늦은 오후의 서늘하고 부드러운 물결도

 

그러므로 밤의 노래는

익숙하지만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휘장과 고립과 용서였다

 

3

 

그때 밤은 창을 열고

먼 숲의 기척들을 바라봤다

먼 숲이 밤의 노래로 새파랗게 타올랐다

창과 악기와 무대에 별이 뜨고

구름과 달이 갈라졌다

 

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옛날이 찾아왔다 밥과 술을 나눠 먹으며

밤의 악보를 기억했다 누구보다

집중했으므로 밤을 사랑한 사람들은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희미하게 어른거리던 꿈과 어둠

나는 아직도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기억한다

흥얼거리면 어느새 밤이 곁을 지키고

어머니와 할머니와 더 오래된 여자와 여자들이 모여

어린 나를 감싸는 것이었다

 

4

 

밤은 노래를 부르며

나와 먼 숲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았다

잃어버린 색깔과 글자가

휘장과 고립과 용서 속에서 뚜렷했다

 

삼십 년 전에도, 더 오래된 날에도

내가 죽었던 마을에는

밤의 길고 긴 노래가 들려왔다

 

  ⸻계간 시산맥2020년 가을호





1970년 서울 출생

2009년 중앙일보 등단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시집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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