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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녘에 / 김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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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0회 작성일 20-12-04 12:28

본문



스름 녘에

 

   김삼환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어둠은 매일 소리 없이 찾아와

창을 두드린다. 슬그머니 가게 안을 들여다보다

교차로를 바삐 건너가던 바람도 몸을 눕혀

잠잠함에 드는 시간이다.

군단처럼 밀고 왔던 햇볕도 막사로 돌아가는지

그림자의 꼬리가 길어졌다가 토막토막 잘려 나간다.

그 시간에 나는 커튼을 올리고 어스름 녘의 창가에 선다.

창은 완강하게 팔짱을 끼고 먼 곳을 향하는

내 시선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으니

저 창의 완강한 팔의 힘도 곧 어둠 앞에 풀어질 것이다.

 

의자를 끌어당겨 창을 등지고 앉을 때

앞에 있는 벽이 일어서서 몸을 감춘다.

벽 뒤에 숨어있던 말들이

기지개를 켜며 걸어 나와 알알이 쏟아지는 시간이다.

그릇을 꺼내 먼지를 턴다.

나는 주섬주섬 큰 그릇에 담을 말과

종지 그릇에 담을 말을 분류한다.

주머니에 넣을 말과 서랍에 넣을 말을 따로 보관한다.

몇 개의 말들은 금고에 넣어 봉인하고

몇 개의 말들은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장에 버리기로 한다.

 

어스름 녘 창틈으로 음악이 흐른다.

그릇을 씻는 물소리에 섞이기도 하고

잠깐씩 나갔다가 들어오는 전기의 몸짓에 멈추기도 한다.

내 기억의 회로에도 크고 작은 지문의 흔적이 역력하다.

내 눈의 각도가 어그러져서

생각의 사면에 빗금이 그어진 것을 모르고

원을 각이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지 이제 알겠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물이 흐른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도 물이 흐른다.

흐른다가 아니라 누군가 흘려보낸다

또는 흐르게 한다가 정확한 말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물이 흘러가게 해야 한다.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하고

흐르다가 멈추기도 하고 멈추었다가

다시 흐르기도 한다.

어스름이 지나면 어둠이 흘러든다.

어둠은 나의 내면의 공간을 채웠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한다.

채우고 빠지는 그 사이를 분주하게 왕복하며,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또 걸어서

오늘 어스름 녘에 다시 서 있다.

 

 계간 시산맥2020년 가을호

 




1958년 전남 강진 출생
1992년 『한국시조』신인상으로 등단
1994년 월간 『현대시학』 시 추천
시조집 『적막을 줍는 새』『비등점』『왜가리 필법』『묵언의 힘』 등
2005년 제15회 한국시조작품상 수상
제37회 중앙시조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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