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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뭇가지에 열린 푸른 기억들 / 조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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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0-12-16 06:47

본문

그 나뭇가지에 열린 푸른 기억들

 

   조정인

 

 

모과나무에는 꽃이 더디게 왔다.


꽃 피고 열매 맺는 일이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먼데 문장들만 같다.


꽃나무 둘레를 느리게 배회하는 발걸음은 하느님의 발걸음을
빌리는 일. 봄날 며칠, 한 줄 문장을 품고 꽃 핀
나무 아래를 서성이고는 했다. 그토록 맑은 세계를
머리에 이고.


그 나뭇가지에 착지한 작은 기별들. 동쪽이 싹 트고
동쪽이 축적되고 동쪽이 자라나


잎사귀 사이사이, 모과 엉덩이가 보였다.
7월 모과는 작고 파란 새들이 날아든 것 같다.


첫 나뭇가지엔 듯, 첫 의혹인 듯 대답인 듯
빛의 광원으로부터 와 있는 둥그런 기억의 진동.


모과는 꽃의 분홍 강보에 싸여, 그 향긋한 어둠에 안겨
눈을 떴을 것인데, 최초, 저의 둥긂을 더듬어 그 나뭇가지에
그런 약속이 있었다는 듯 돌아왔을 것인데


파동으로 가득한 침묵 한 그루.


나무는 빛과 어둠의 협업, 혹은 협연으로 있다.
절반의 빛과 절반의 어둠으로 쓰인 밀서로 거기.


언제부터인가 모과나무는 모과나무라는 그런, 기어이 지켜지는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곧 실종되는 기억으로.

 

 

           ⸺반년간 서정과 현실2020 하반기호

jojungin-200.jpg

 

1998년 《창작과 비평 》등단
제2회 토지문학제 시부문에서 대상
시집『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장미의 내용』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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