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하드 /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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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23회 작성일 21-01-13 11:54본문
다이 하드
서효인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죽음을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사고사야말로 최대한의 자연사다
내가 죽으면 보험회사 직원이 출동할 거고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덤프트럭 운전자에게도 선량함이 깃들어 있을 테고 중학생 자녀라거나 갚아야 할 대출이라거나 하는 게 있을 테다
내가 죽으면 아내는 보험회사에 서류를 제출해야 할 것이며 운전을 더욱 무서워할 것이며 서류는 꼼꼼하게 잘 낼 것이다 갚아야 할 대출이라거나 하는 것은 여기에도 남을 테다
내가 죽으면 서울 서쪽 병원의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모여 웃거나 울 것이다 아직 젊은 축이니 우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갈수록 울 일이 없으니 이를 기회 삼아야 할 테다
내가 죽으면 이런 방식의 자연사를 기리면 좋겠다 그날 아침도 그는 회사에 가기 싫어했으며 그 싫어함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아침이었다고 그것은 자연의 귀감이 될 테다
내가 죽으면 덤프트럭이 좌회전하기 전에 내가 스마트폰을 들어 트위터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길 바란다 알 만한 사람도 없고 궁금해할 사람도 없을 테다
내가 죽으면 어린 딸들은 없는 아빠를 찾아 무척이나 울다가 그 울음이 몸에 스며들어 문득 부서질 듯 아프기도 하겠지만 세상에는 미안하지만 미안해할 수도 없는 일도 있을 테다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미친놈처럼 운전하는
사람이 꼭 있어서 평소에 안 하던 욕을 자연스레 사고처럼
하게 된다 저 새끼가 뒈질라고 환장했나
― 《문장웹진》 2020년 10월호
1981년 전남 목포 출생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에세이 『잘 왔어 우리 딸』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등
제3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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