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멀미 / 박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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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29회 작성일 15-12-01 10:37본문
땅멀미
박형권
겨울 대구 한 상자 경매에 넣으면
아랫배가 빠져나간 듯 허기지다
지난밤 그물을 뒤흔들었던 파도가 대구 아가미처럼 퍼덕이는 시간
파래 같은 돈 세어본다
한 움큼도 되지 않는 바닷바람, 따라
새벽 시장의 한쪽 모퉁이에서 국밥 냄새가 난다
거제 외포항 동남쪽 3마일 지점에서 밤새 출렁거린 어부들이
희뿌연 김 속에서 허물어지는 몸을 맞대고
후루룩후루룩 돼지비계를 건져 올린다
삶은 해삼처럼 졸아든 헛배가 조금 든든하고
잠이 찾아온다
살덩이 몇 점 없는 국물인데 이(齒) 사이에 어둑새벽이 낀다
바닷가 돈에는 지느러미가 있다
국밥집이나 술집이나 언니들의 거웃 사이로 요리조리 헤엄쳐 다니는 지느러미
침 퉤 발라서 풀어놓으면 알아서 정든 곳에 가서 깃든다
새벽을 쑤시면서 국밥집을 나오면
꽃게처럼 알록달록 화장을 하고 이동 커피숍이 길을 가로막는다
—커피 한 잔 얼마지럴
—천 원이에요 배 타고 가시려면 커피 한 잔 하셔야 되어요
그 여자 말씨 천 원이면 싸다 생각하며
불면(不眠)을 받는다 불면(不眠)이 움찔한다
하아, 요즘 육지에 오르면 땅이 이 난장이다
땅이 울고 땅이 기운다
땅멀미 하는 걸 보니 어서 배로 가야겠다
대구 팔아서 경유 한 드럼 싣지 못하고 배에게 망극하다
대구잡이 배가 물속에 보아둔 대구곤이를 향해
한 생애를 밀어넣은 어업을 싣고 어찔어찔 간다
내 한 세월도 이제 와서 보면 오지게 걸려 떨어지지 않는 멀미였나니
1961년 부산 출생
경남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우두커니』 장편동화 『돼지 오월이』『웃음공장』『도축사 수첩』 등
제17회 수주문학상, 제2회 애지문학회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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