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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말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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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0회 작성일 21-02-22 21:41

본문

[]의 말

 

  이현호

 


밤이 오는 길목에 목련꽃 간판으로 내어 걸고 침묵의 난전(亂廛)을 열면 좋겠네

이곳을 모든 기대로부터 떠나온 발길들 알고 찾아

서로의 눈동자 가만가만 들여다보며 거기 쓰인 비밀한 밤의 문장들 물물교환 한다면

말 못할 것들 겹겹 쌓여 빚어진 눈빛그 눈의 말 눈으로 들으며

고개 끄덕거릴 일도 없이

눈 깜박이는 몸짓말로 알아들었다는 말 이해한다는 말 용서하라는 말 다 할 수 있으면

 

미래 없는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이 포옹할 때 연인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허공을 발견하듯이

이미 우리들은 이 밤의 문법을 문득 알고 있어

스륵 닫혔다 열리는 눈꺼풀은 어깨를 토닥이는 손보다 그윽하고

싸리비 같은 속눈썹은 눈동자에 덮인 물기를 쓱 쓸어낼 수 있다면

좋겠네 이 극진한 침묵이 북적거리는 가게로

어둑발 내리는 길가에 달빛 네온사인 매어놓은 우리들의 난전으로 오늘밤은

 

침묵의 거부(巨富)인 귀신들과 울음 울 곳 찾는 당신도 온다면 좋겠네

나와 너의 침묵 주고받으며 더불어 서로의 침묵 안으로 침몰하여

그 너른 침묵의 해저에서는 깊어가는 숨소리만 들리고

인젠 가고 없는 수많은 당신들의 발걸음이 들숨 타고 왔다가

발자국만이 날숨에 쓸려가고

남은 발자국들 차곡차곡 눈동자에 모여 살며 퇴고할 것 없는 눈빛 이룬다면

 

우리는 사랑하지 않아도 늘 우리를 애틋하게 껴안고 있는

침묵이라는 비문(非文)과 침묵이라는 귀신들의 회화(會話)를 배운다면

새의 죽지가 가장 높이 올라갔다가 가장 낮게 내려가는 그 찰나의 퍼덕임이 어떻게 허공을 업고 가는지

죽은 사람의 눈을 손바닥으로 빗어 감기는 건 다 읽은 책을 침묵의 도서관에 돌려주는 것뿐임을 알게 되겠지

침묵은 모두의 비문(碑文)이라는 것을 기억하겠지

 

목련 지고 달빛 시들어 침묵도 폐한 백주대낮에는

떠나간 사람도 떠나온 사람도 반도네온같이 첩첩한 눈빛도 귀신처럼 투명한 눈빛도

침묵의 난전이 입소문 덕에 성황이라는 실없는 농담이나 던지며

모이는 곳마다 돗자리 깔고 평상 펴고 긴 발이라도 내걸면 좋겠네

홀로 있을 때도 침묵을 데리고 왁자지껄하면 좋겠네

우리 죄 사라진 뒤에도 침묵은 남아서


 -2회 시인동네문학상〉 수상작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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