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미안하다 / 박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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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5회 작성일 21-03-13 12:49본문
꽃들에게 미안하다
박제영
지난 칠 년 동안 월간 춤지에 꽃에 관한 칼럼을 연재했다 돌이켜 세어보니 초대에 응해준 꽃이 여든넷이다
동백, 매화, 목련, 벚꽃, 찔레꽃, 모란, 작약, 능소화, 국화, 꽃무릇, 억새, 수선화, 달맞이꽃, 오랑캐꽃, 진달래, 민들레, 할미꽃, 애기똥풀, 엉겅퀴, 패랭이꽃, 접시꽃, 백일홍, 구절초, 서리꽃, 무화과, 며느리밥풀꽃, 냉이꽃, 나팔꽃, 채송화, 라일락, 개망초, 해바라기, 장미, 사루비아, 코스모스, 수련, 수국, 봉선화, 노루오줌, 유채꽃, 연꽃, 양귀비, 명자꽃, 안개꽃, 칡꽃, 감꽃, 박태기꽃, 에델바이스, 대나무꽃, 앵두꽃, 바람꽃, 산수유, 얼레지, 메꽃, 강아지풀, 분꽃, 담쟁이, 호박꽃, 칸나, 금잔화, 튤립, 토끼풀, 해녀콩, 오얏꽃, 녹두꽃, 독초, 파꽃, 도라지꽃, 백합, 투구꽃, 아카시, 목화, 꽈리, 치자, 해당화, 장다리꽃, 선인장, 맥문동, 고마리, 말리꽃, 밤꽃, 원추리, 감자꽃, 맨드라미
초대에 응해준 꽃들에게 이제 와 미안하다
고백하자면 구독률을 올려야 했던 나는 시종 꽃들에게 물었다 색(色)을 물었고 향(香)을 물었다 음란하고 속되고 삿된 사정만을 집요하게 물었다
어느 한 꽃도 욕보인 죄를 묻지 않았다
묻기는커녕 욕을 꽃으로 돌려주었다
평생 사랑을 빙자한 죄를 묻지 않는 당신
꽃보다 꽃 같은 당신
당신에겐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겠다
―박제영 시집 『안녕, 오타 벵가』 (달아실, 2021)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식구』 『뜻밖에』
『그런 저녁』 『조화벽과 유관순』『안녕, 오타 벵가』
저서『사는 게 참 꽃 같아야』등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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