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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동안 내리는 비 / 정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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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04회 작성일 21-03-17 09:54

본문

년 동안 내리는 비

 

   정한용


 

오늘로 꼭 천 년이군요, 주름마다 새겼던 기록도 무뎌져

나는 어디, 당신은 또 어디? 고문서 연구자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지워졌지요, 이게 뭐야, 사용하지 않게 된 기호와 의미 사이, 맥락 끊기고요,

화석을 머금은 돌조각조차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한 땀씩 꿰맨 기억만은 선명해요,

비가 오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물길도 바람길도 다 끊기고, 드러난 허공,

낡고 헐어 못쓰게 된 맥락 틈으로 붉게 부식된 쇳가루들이 떨어져요,

 

밤이 고요히 부서져요, 습자지처럼 울음을 머금은 어둠을 펴 말리다, 이게 뭐야

혼자 중얼거려요, 우리는 너무 멀리 왔어, 새소리도 고양이 발자국도

낡아가고, 비었다는 생각도 바싹 말라 텅 비고, 울음의 문서들이 덜그럭덜그럭

혹시 기억해요? 단 석 줄로 된 해독 불가능의 책력(冊曆),

덜그럭덜그럭, 이젠 너무 늦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주해를 덧붙이고

한참 안으로만 타는 불꽃을 바라보지요, 푸르게 번지는 심연,

꼭꼭 봉인하려는 음모들, 덮이는 봉우리들, 짙은 침묵들,

 

우리는 둥둥 떠내려가요, 떠내려가며 인사, 오랜만이군,

더 어두워지고, 골목마다 침묵들이 분주히 오가고, 어이, 밥은 먹었어?

꼬여버린 기호가 우리 가슴을 묶을수록 어둠은 더 단단해지는데

여긴 어디, 당신은 지금 어디? 자꾸 비 내려요, 배가 고픈데

풀도 무성해 길이 끊겼는데, 자꾸 어디로,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그런데 사실, 아무도 내게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아요, 어디냐고, 누구냐고

밥은 먹었느냐고, 비가 오니까, 천 년 동안.

 

 - 정한용 시집 『천 년 동안 내리는 비』(시인수첩, 2021)



 

junghangyong-250.jpg

 

1958년 충북 충주 출생

경희대 문학박사

1980년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 당선

1985년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 시작

시집으로 얼굴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페』 『나나 이야기

흰 꽃』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

영문시집 How to make a mink coat

평론집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 

2012년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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