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동안 내리는 비 / 정한용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천 년 동안 내리는 비 / 정한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3회 작성일 21-03-17 09:54

본문

년 동안 내리는 비

 

   정한용


 

오늘로 꼭 천 년이군요, 주름마다 새겼던 기록도 무뎌져

나는 어디, 당신은 또 어디? 고문서 연구자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지워졌지요, 이게 뭐야, 사용하지 않게 된 기호와 의미 사이, 맥락 끊기고요,

화석을 머금은 돌조각조차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한 땀씩 꿰맨 기억만은 선명해요,

비가 오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물길도 바람길도 다 끊기고, 드러난 허공,

낡고 헐어 못쓰게 된 맥락 틈으로 붉게 부식된 쇳가루들이 떨어져요,

 

밤이 고요히 부서져요, 습자지처럼 울음을 머금은 어둠을 펴 말리다, 이게 뭐야

혼자 중얼거려요, 우리는 너무 멀리 왔어, 새소리도 고양이 발자국도

낡아가고, 비었다는 생각도 바싹 말라 텅 비고, 울음의 문서들이 덜그럭덜그럭

혹시 기억해요? 단 석 줄로 된 해독 불가능의 책력(冊曆),

덜그럭덜그럭, 이젠 너무 늦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주해를 덧붙이고

한참 안으로만 타는 불꽃을 바라보지요, 푸르게 번지는 심연,

꼭꼭 봉인하려는 음모들, 덮이는 봉우리들, 짙은 침묵들,

 

우리는 둥둥 떠내려가요, 떠내려가며 인사, 오랜만이군,

더 어두워지고, 골목마다 침묵들이 분주히 오가고, 어이, 밥은 먹었어?

꼬여버린 기호가 우리 가슴을 묶을수록 어둠은 더 단단해지는데

여긴 어디, 당신은 지금 어디? 자꾸 비 내려요, 배가 고픈데

풀도 무성해 길이 끊겼는데, 자꾸 어디로,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그런데 사실, 아무도 내게 질문 따위는 하지 않아요, 어디냐고, 누구냐고

밥은 먹었느냐고, 비가 오니까, 천 년 동안.

 

 - 정한용 시집 『천 년 동안 내리는 비』(시인수첩, 2021)



 

junghangyong-250.jpg

 

1958년 충북 충주 출생

경희대 문학박사

1980년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 당선

1985년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활동 시작

시집으로 얼굴없는 사람과의 약속』 『슬픈 산타페』 『나나 이야기

흰 꽃』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

영문시집 How to make a mink coat

평론집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 

2012년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181건 22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13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0 0 05-16
213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4 0 05-16
212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4 0 05-16
212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 0 05-05
212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4 0 05-05
212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6 0 05-05
212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0 0 05-03
212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27 0 05-03
212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0 0 05-03
212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5 0 05-01
212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7 0 05-01
212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1 0 05-01
211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4 0 04-29
211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7 0 04-29
211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8 0 04-29
211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4 0 04-25
211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3 0 04-25
211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2 0 04-25
211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2 0 04-19
211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3 0 04-19
211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3 0 04-13
211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0 0 04-13
210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7 0 04-13
210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64 0 04-08
210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5 0 04-08
210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5 0 04-08
210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7 0 04-05
210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9 0 04-05
210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2 0 04-05
210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8 0 03-29
210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 0 03-29
210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50 0 03-26
209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9 0 03-26
209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0 0 03-26
209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1 0 03-22
209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5 0 03-22
209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4 0 03-22
209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1 0 03-20
209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1 0 03-20
209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7 0 03-18
209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5 0 03-18
열람중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4 0 03-17
208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3 0 03-17
208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4 0 03-17
208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8 0 03-13
208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3 0 03-13
208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4 0 03-13
208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38 0 03-09
208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8 0 03-09
208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1 0 03-09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