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을 떠받치다 / 김창균 > 오늘의 시

모음을 떠받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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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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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심하게 불어가는 골목의 간판들은 모음으로 발성한다.

가끔 자음의 발성이 있긴 하지만 그건 드문 일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단골 술집 간판 이름이

'영자집'에서 '여자집'으로 바뀌지만 누구도 낯설어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의 감식가들만 그 사실을 알 뿐이다.

모음을 받치다 간 자음들, 골목을 비질하며 가는 바람들.

어쩌면 골목을 단골로 걷던 사내들이

그 숱한 자음들을 삼키고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받치고 있던 잇몸이 우수수 무너질 때처럼

골목엔 협궤같이 긴 울음이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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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자음을 버린 간판에 기대어 불러보는 나를 떠난 열망들.

꺼진 불 밑을 받치고 서서 안간힘으로 제 몸을 태우던 연탄들이

또 식은 열망들이 밤새 하얗게 서리를 맞으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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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균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시인동네, 2016)

1966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96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먼 북쪽』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산문집 『넉넉한 곁』 등

제4회 발견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