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생각 / 김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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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66회 작성일 21-04-08 21:39본문
감자 생각
김금용
붉게 익지도
푸르게 싱싱하지도
노랗게 여물지도 못한
못난이 감자가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진다
물 한 방울 빛 한 방울 없는 종이박스 안
그를 찾아든 건 밤하늘의 별일까
베란다 창밖의 뿌연 햇살일까
남자는 풀지 못한 숙제가 생기면 동굴로 숨어든다 했지
여자는 오히려 밖으로 나와 앉아 수다로 문제를 푸는 걸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남녀가 부부로 사는 동안
내뿜는 화기로, 쏟아내는 울분으로
돌멩이에서도 이끼가 생기지
모나고 멍든 안테나를 길게 빼고 바깥 공기를 타진한다
우주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긴 장화를 신는다
박스 틈바구니로 새드는 빛과 습기에 귀를 연다 소리를 찍는다
검은 멍에서 뇌혈관이 터지듯 기어나오는 노란 줄기
동글게 말아쥔 주먹마다 새순이 붙어있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지만
내일은 다시 걷기 좋은 날
제 안의 물기를 거둬 싹을 품어내는
모진 어미감자 품에서
보랏빛 감자꽃 한 송이 문득 피어날지
누가 알랴
―계간 《미네르바》 2021년 봄호
동국대 국문과 졸업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 중국문학과 졸업
1997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광화문 쟈콥』 『넘치는 그늘』 『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
번역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 『나의 시에게』
중역김남조시선집 『今天與明天( 오늘 그리고 내일)』 등
펜번역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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