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에 대한 우리의 약속 /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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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24회 작성일 21-04-25 22:23본문
금연에 대한 우리의 약속
김중일
우리는 금연을 하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다.
금연은 하면 결코 안 되는 것이다.
너는 세상 사람 모두가 금연을 하게 되면 지구가 정말 땅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다 죽는 것이다. 세상을 걱정한다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담배를 피워야 한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흡연자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나여야 할 것이다. 너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기에는 건강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
약속을 지키는데 ‘의지’가 필요하다면
나는 그 의지를 너에게서 마지막 한 개비처럼 빼앗아오고 싶다.
특별히 두 손을 다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늘 온갖 걱정에 담배에 불을 붙여놓고 있다.
아주 길고 가는 연기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고요히 하늘로 올라가는 걸 지켜보는 건, 걱정을 깜박 잊을 만큼 보기 좋은 일이다.
하늘에 올라가 비끄러매인 연기가 우리를 공중에 부양하고 있다.
지구라는 작은 바스켓에 우리는 다 함께 타고 있다.
그중에 희생자들을 태우는 화장장의 연기나
흡연자들이 피우는 가느다란 담배 연기들이 모여, 열기구의 무수한 날줄처럼 둥근 ‘공중’에 매달려 있다.
추락하는 바스켓 속에 갇힌 듯 땅이 꺼지는 유족들의 뜨거운 탄식이나
흡연자들이 내뿜는 입김과 함께,
해와 달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더운 공기가 밤낮으로 공중을 부풀린다.
그러니 혼자 오래 살겠다고 금연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무임승차인가.
뭔가 좀 아리송하더라도, 이 순간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나는 잠든 너의 담배 냄새나는 부르튼 입술에 몰래 키스를 한다.
유족인 너의 몸은 한 개비의 담배처럼 바스러질 듯 깡말라 있다.
조금만 힘을 주어 붙잡으면 툭 맥없이 부러질 것 같다.
내일 나는 너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금연을 권유할 생각이다.
대신 흡연을 하는 나를 담배처럼 더 많이 피우라고 할 생각이다.
보통의 공기보다 4% 이상 이산화탄소가 많이 함유된 너의 날숨을 키스로 들이마시는 것도 이미 나의 중요한 흡연 활동,
그러니까 열기구 태스크 중에 하나이다.
서로가 한 줌 재가 될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매 순간 마지막 남은 한 개비처럼 피우고 또,
피울 것이다.
작고 빨간 꽃처럼.
⸻반년간 《상상인》 2021년 1월, 창간호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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