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가이드 / 권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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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16회 작성일 21-05-21 20:46본문
외계인 가이드
권기만
그는 팔이 네 개다
쉴 때는 꼬리를 의자처럼 받친다
일상어는 손을 써서 나타내고
사랑어는 꼬리를 써서 나타낸다
사랑한다고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이자
눈빛은 벌써 자루다 행성에 도착해 있다
지구식으로 꼬리를 치켜세워 지금이 최고야 하다가
해저 3만 리 귀신고래 호가 오자 얼른 내 뒤로 숨는다
떡 벌어진 입속으로 간신히 밀고 들어간다
의자운송기에 타자 예약석이 다가온다
느린 항해가 3만 리 호의 장점
장생포에서 출발 시드니를 거쳐 리마에서 돌아오는 코스다
너무도 다양한 생물군에 한 달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수천조의 상상이 꺼지지 않는 빛의 길로 진입했다고
큰 눈을 더 크게 껌뻑인다
음악처럼 연주되는 자루다 행성은 빛의 변곡점이라며
언제 한번 와서 빛 위를 걸어보자 한다
포털머신에 올라타기 전
꼬리로 나를 감아 꼬옥 안아준다
동굴 속 같은 울림을 남기고 그는 갔다
그날 이후 서쪽 하늘 중간쯤 자루다의 미소가 걸렸다
―계간 《시산맥》 2021년 여름호
경북 봉화 출생
2012년《시산맥》으로 등단
시집으로『발 달린 벌』 등
제4회 월명문학상, 제7회 최치원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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