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칸 /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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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방 한칸
이시영
신림 7동, 난곡 아랫마을에 산 적이 있지. 대림동에서 내려 트럭을 타고 갔던가, 변전소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가. 먼지 자욱한 길가에 루핑을 이고 엎드린 한칸 방. 누나와 조카 둘과 나의 보금자리였지. 여름밤이면 집 앞 실개천으로 웃마을 돈사의 돼지똥들이 향기롭게 떠가는 것을 보며 수제비를 먹었지. 찌는 듯한 더위에 못 이겨 야산에 오르면 시골처럼 캄캄하던 동네, 개천 건너 그 동물병원 같은 보건소는 잘 있는지 몰라. 눈이 크다란 간호원에게 매일 아침 붉은 엉덩이를 내리고 스트렙토마이신을 한대씩 맞고 다녔지. 학교가 너무 멀어 오전 수업을 늘 빼먹어야 했던 집. 아니 결핵을 앓던 나를 따스히 보살펴 주던 집. 겨울이면 루핑이 심하게 울어 조카의 어린 몸을 난로처럼 안고 자던 방. 아니 봄을 기다리던 누님과 나의 지상의 좁은 방 한칸.
-이시영 시집 『은빛 호각』(창비, 2003)

1949년 전남 구례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은빛 호각』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호야네 말』
시선집으로 『긴 노래, 짧은 시』 『하동』등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박재삼문학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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