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병에 정들다 보니 / 손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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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7회 작성일 21-08-08 17:09본문
오래 병에 정들다 보니
손진은
오래 병에 정들다 보니 알겠다
병에도 위계가 있단 걸
사막의 사자처럼 센 놈이 늑골언덕 깊숙이 사무치면
위아래서 빼꼼히 얼굴 내밀던 치들은
얼른 엎드린다는 걸
그러다 그 정든 병 유순해질 즈음이면
꼬리뼈에 핏줄에 마음의 살들에 숨어 살던
밀사들 얼른 고개를 들어 세력 다툰다는 걸
때로 다른 불우의 습격에 스러져간 놈들,
내 빈들의 영토는 버려진 마음들과 병이 암수가 되어
식구를 들이고 곁에 눕고 몸을 내줬다는 걸
지금도 엑스레이를 보면
내 몸의 왕국 점령하고 나부끼며 쇄락해갔던
때로 통보도 없이 왔다간 환후의 연혁 아련히 찍혀 있다는 걸
그런 줄도 모르고 많은 미망과 헛것에 골몰했던 불모의 영지에
파란만장 술과 국밥, 울음과 다정 흘려보냈던 목구멍의 뻔뻔함!
오오래 병과 뱃동서 하다 보니 알겠다
비온 후 공터에 무수히 돋아나던 잡초의 생몰처럼
내 영토에 머물다간 그들 잘 건사하지 못했던 불우가
지난 왕국의 역사였다는 걸
―손진은 시집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걷는 사람, 2021년)
경북 안강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5년 매일신문 시평론에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숲에 풀어놓고』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저서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한국 현대시의 정신과 무늬』
『현대시의 지평과 맥락』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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