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집 / 주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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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6회 작성일 21-08-09 22:36본문
채집
주영헌
물속으로 흘러든 소리들을 잠잠히 들어본다
수많은 소리를 채집했을 물의 능력
투명한 자력이 있어 산 그림자와
몇 채의 인가(人家)를 달고 있다
때때로 바람 냄새가 묻어 있는 것을 보면
흔들리는 것들, 다 물의 채집을 돕는 일족이겠다
긴 시간 흘러왔을 물길에는 수많은 소리가 붙어 있다
흐르는 만큼 쌓이는 물가
종(種)과 계(界)의 일상이 그대로 모여 물길이 붐빈다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나
천렵을 끓이고 있는 양은솥의 들썩임
버들가지가 일필휘지로 물결에
주석(註釋)을 달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 붙은 물의 페이지
붐비는 물과 물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타지에서 흘러왔을 물길은 또 다른 타지로 흘러간다
물의 길에는 이정표가 없고
흐르는 내력의 편도만 있을 뿐이다
오후가 되고
물의 그늘은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주변의 어둑함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강
저녁의 어둠과 아침 채집을 반복해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어 속이 다 보인다
하나둘 불빛들이 물가에 다다라 불을 켜고 있는 반짝거리는 채집
―주영헌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시인동네, 2016)
1973년 충북 보은 출생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9년 《시인동네》로 등단
시집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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