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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는 가족 /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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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3회 작성일 21-08-26 22:27

본문

길 떠나는 가족*

 

    이동훈


열리지 않는 길을 오래 걸었네. 

상흔이 가시지 않은 서울에서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남쪽으로

입때껏 가리어 있던 길을

그리움의 물꼬 트고 넘쳐흐르고 싶었네.

그림이 밥이 되지 못하고

사랑이 밥을 대신하지 못하여

식구는 떠나고 눈물자국만 남은 날들

닫혔던 길 위에 뼈까지 야위어서야

꽃피고 새 우는 남쪽이 보이네.

소달구지에 실은 꿈,

내려놓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내딛는 황소 걸음새도 식구 표정도

풀어놓은 구름보다 경쾌한데

다시 헤어지는 일 없이

술 담배도 끊고 그림만 그릴 거라고

고삐를 그러쥐는데

이상하지,

남쪽 가는 길이 이리 환하다니.

더디기만 하던 길이

서귀포 앞바다까지 금세 열리다니.

이제 굶어도 배고프지 않으니

참 이상하지,

꽃상여도 아닌데마지막도 아닌데

눈물은 왜…….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 종이 그림과 일본의 가족에게 보낸 엽서 그림이 있음.



  ㅡ월간 우리20175월호




 

1970년 경북 봉화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교육대학원 졸업
2009년 월간《우리시》신인상 수상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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