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자 / 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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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83회 작성일 21-10-01 21:23본문
낙관주의자
강성은
잉어찜을 먹었다 잉어는 아주 컸고 어제까지도 물속을 헤엄쳐 다녔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않았고 저수지의 깊은 물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잠긴 낮은 지대의 집들과 지붕들을 생각하지 않았고 그곳에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의 연못에는 커다란 잉어 떼가 검은 물속을 무리 지어 다녔는데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고 하지만 누군가 뭔가 던지기만 하면 탐욕스럽게 달려들었다 어떤 잉어들은 사람의 얼굴을 닮았고 사람보다 오래 살기도 한다고
등 푸른 생선을 먹을 때도 먼 바다를 생각하지 않았고 커피를 마실 때도 커피농장과 그곳의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닭을 먹으며 새들을 생각하지 않았고 소를 먹으며 돼지를 먹으며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았고 먹고 또 먹었다
잉어 가시가 목구멍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지 않았다 커다란 잉어의 커다란 가시 어떤 의심도 없이 나는 그것을 삼켰는데
검은 물속에서 문득 아름다운 빛깔의 비늘을 드러내 보이며 잉어는 진흙도 먹을 것이다
―계간 《애지》 2015년 가을호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Lo-fi』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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