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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의 세계 / 김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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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01회 작성일 21-11-02 20:35

본문

물론의 세계 

 

 김두안

 

 

피아노 속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음악의 얼굴은

고요가 지워진 32

흰 블라우스와 우아한 꽃무늬 치마를 입었군


음악이 유령처럼

떠다니는 동안

방 안에 향수냄새가 난다


나는 기록한다 외로움이 죽어서 음악을 찾아왔다 그러나 음악 속에 가득 유폐된 눈물들, 음악의 투명한 머리카락이 자라나 나는 눈을 감는다

 

음악이 내 슬픔을 본다, 멈추어다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다만 안 된다고


피아노 속에서 비가 내린다

고양이가 나를 듣는다

누군가 피아노 속에 지독한 사랑을 숨겨놓았군


그래요 난 사랑을 들켜버렸어요

음악의 목소리가 쉼표처럼 떨린다


난 피아노 속에서 흘러나온 고독이란 책을 읽는데 왜 기억들은 자꾸 빗물에 젖는지 몰라


다시 음악이 자신의 악보를 접고 피아노 속에 공손히 내려앉아 잠이 든다


빗속을 홀연히 떠도는

저 비음은

울음일까 노래일까


그러니까 난 괜찮아요

우리는 물론의 세계니까


나는 음악을 깨워 밥을 먹고

방 안에 촛불을 켠다

내 음악은 죽은 지 너무 오래됐다


김두안 시집 물론의 세계(시인수첩, 2019)

 


 

1965년 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생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달의 아가미』
 물론의 세계 

제4회 한유성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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