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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면 /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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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55회 작성일 15-12-23 10:22

본문

 구면

 

  김 언

 

  나는 몰라요. 당신 이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나도 몰라요. 당신 생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가서 만져봅시다. 음 이렇게 생겼군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요. 딱딱하고 거칠게 다루지 마세요.

  이건 생각이니까요. 이건 이름이잖아요.

  그건 당신 생각이에요.

  내 생각도 당신과 다르지 않아요.

  그건 내 생각이에요.

  뭐 이렇게 생겨먹은 이름이 다 있어.

  보다보다 이런 생각은 또 처음 보네.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이름이 그 모양이니.

  당신 생각도 썩 좋은 인상은 아니랍니다. 생각이 그 모양이니.

  우리의 첫인상은 이렇게 결정되는군요.

  하루가 열두 번 지나고 한 달이 열두 번 지나고

  일 년이 열두 번 지나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얼마 만인가요? 우리의 첫인상을 만나는 게.

  태어나서 영영 못 볼 줄 알았답니다.

  이렇게 만져보니 어때요? 우리의 첫인상.

  처음이니까 아직은 생소해요. 간지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욕도 많이 했어요. 우리의 첫인상에 대해.

  내 말은 여전히 생각 중이고 당신 이름도

  여전히 고민 중인가요? 그건 앞으로의 일이고

  만져보니 벌써 구면입니다. 십 년 전 당신의 이름.

  십이 년 전 당신의 생각. 열두 달도 더 전에

  결정된 그 생각을 나도 모르게 찾아가는 손바닥.

  너도 모르게 맞이하는 뺨따귀를 향해.

 


20090921000045_0.jpg


 

1973년 부산 출생
부산대 산업공학과 졸업
1998년 《시와 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거인』』『모두가 움직인다』
2006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제9회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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